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는 매년 봄을 맞는 축제가 있다. 사순절 직전의 하루를 잡아 말을 사람들이 각종 요상한 치장을 하고 떠들고 논다. 가장행렬 뒤에는 귀신복장을 한 무리가 사람들을 향해 물도 뿌리고 먼지를 날린다. 저녁에는 밤새도록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국가인 유럽.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부활절 전 사순절 기간 (40) 금욕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직전 하루만이라도 욕망을 분출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화려한 행렬은 곧 다가올 봄을 상징하고, 뒤에서 사람을 괴롭히는 몸짓의 귀신과 마녀의 행렬은 봄이 오는 것을 방해하는 겨울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올해의 봄맞이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어느 해보다 연초부터 강추위와 폭설로 시작한 겨울이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다. 이른바 꽃샘추위가 지난주 내내 우리를 힘들게 하더니 앞으로 한두 주 더 계속될 것이라는 기상전말이다. 새벽기도를 나올 때마다 봄은 과연 오는가?” 질문을 던진다. 크게 일어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출발한 2010년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한 해의 4분지 1의 달력이 넘어간 것이다. 매일 드리는 새벽예배, 주수금 공예배, 주당 네 번의 제자훈련과 사역자 훈련, 그리고 각종 크고 작은 설교와 강의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한 주 한 주가 화살같이 빨리 지나간다. 무엇보다 새 성전 입당을 위한 준비에 마음이 더 분주하다. 정말 내고 일고 싶은 책을 읽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편안하게 차 한 잔 할 시간이, 함께 하고 싶다고 늦게 낳은 아들과 어디를 데리고 다닐 짬이 나지 않는, 그야말로 기계적인 분주의 삶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까? 저녁 훈련시간에 몇 주 연속 나오지 못하는 남성 성도들을 볼 때 연민을 느낀다.

 

  새벽부터 직장에 나가 하루 종일 바쁘게 뛰어다니고 저녁도 못 먹은 채 늦은 시간 들어오는 현대인들에게 하루라도 푹 쉬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런 사람들에게 예배에 빠지지 말라, 새벽기도와 철야기도에 나와라, 훈련시간에 늦지 말라고 하는 내 마음도 사실 편하지만은 않다. 거기에다 잊을만하면 전도하라고 캠페인을 벌이니 전도하기가 죽기보다 싫은 사람은 정말 지긋지긋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을 뛰어넘는 진리가 있다. 그것은 순종하는 소수에게는 오히려 분주함을 상쇄하는 보상이 따른다는 것과, 부담으로만 여기고 따르지 않는 다수에게는 더욱 더 빠르고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온전하게 주십소(주일예배 성수, 십일조, 소그룹 참여)의 삶을 살고, 교예배에 다 참석하는 사람은 다수가 아닌 소수이다. 그 소수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시고 초자연적인 축복과 행복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크게 일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가능하다고 해도 하나님과 별로 관계없는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모실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최상으로 우리를 세워 주시는 것이다. 아무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결국은 봄이 올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법은 결코 무시되거나 변경되지 않는다. 이제 고난주간이다. 주님께서 죄로 말미암은 우리의 모든 고난을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고난은 청산되었다. 주님처럼 남을 위한 고난, 교회를 위한 고난, 대속적인 고난에 동참하는 일만 남았다. 주님의 뜻대로 살면서 당하는 고난도 끝나는 때가 있다.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황이 될 때가 바로 그 때이다. 고난주간 특새는 평소 새벽기도를 드리지 않는 성도도 참여하는 그야말로 특별한 절기이다. 고난주간 주님께 드리는 헌신으로 겨울을 몰아내고, 불필요한 고난을 벗어버리는 위대한 부황이 되게 하자. 주여 부활의 봄이 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