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20세기와 21세기에 올라간 것이 많이 있으나 그 중에서는 GNP가 올랐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 수준도 퍽 높아졌다. 아파트의 층수도 높아졌고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의 수나 속도도 높아 졌고 그 밖의 많은 것이 높아졌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평균수명이 높아졌다는 일이다. 인생 70 고래휘라고 하였으나 이젠 회갑은 보통 생일이고 70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80,90도 그렇게 희소하지도 않다. 따라서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평균수명이 높아졌다 해도 높아진 대로 결국은 죽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영양이 좋아지고 의술이 발달된다 해도 결국은 늙고 죽는다. 그런데 길어지고 높아진 수명 때문에 때로는 영광도 누리고 즐거움도 많으나 때로는 그것 때문에 병든 몸으로 더 오래오래 말도 못하고 고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나이가 더 할수록 이런 저런 의미에서 대체 죽음이 무엇이냐고 묻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 한 분을 빼놓고서는 한 사람도 죽었다가 다시 와서 죽는 순간과 그 다음의 일에 대해 경험한 것을 말해준 사람이 없기에 죽음이 무엇이냐에 대한 연구는 제한적이며 대답도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다 죽어가기에 놀라움과 슬픔 속에 보내면서 죽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대답을 하게 되어 여러 가지로 대답이 나왔는데 내용은 퍽 다르다.
어떤 개인이 생각한 것을 이론화해서 강하게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지방이나 민족이 오래 생각해 온 것을 이웃이나 자손들에게 전하고 가르치기에 배운 것을 가지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중의 몇 가지 대중적인 대답을 살펴보면 죽음이란, 먼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인데 “무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가고 끝나는 것”
이라고 하며 다음의 견해는 “어디서 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거기서 왔다가 어딘가 그곳도 분명히는 모르나 거기로 가는 것” 그것이 죽음이라 하고 또 한 견해는 “내가 죽은 뒤에도 내 자손에게 내 생명을 이어주고 떠나는 것” 그것이 죽음이라고도 하며 또 한가지 견해는 “사람이란 죽었다가 얼마 후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윤회의 과정을 밟게 되는데 죽음이란 그 한 과정에 불과하다”고 믿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제 죽음이 무엇이냐는 데 대한 기독교의 대답을 들어야 한다.